고민거리

보수를 미러링하는 진보

망아지05 2016. 8. 18. 16:13

전반적인 흐름을 종합 해보면, 진보는 보수를 미러링하고 있음이 맞다. 
 진보계열이 민주당이나 국민의당과 대 국민 이미지에 있어 차별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보면 벌써 눈치빠른 진보의 리더들은 작전을 세울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 보수를 미러링하는 진보

 진보의 보수 미러링 : 1. 보수의 세대간 갈등   l   진보의 젠더 갈등
 
 보수의 콘크리트층이 진보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처음엔 힐난하고 비난하고 비판했으며 경멸까지 했을테지만 전략적 측면에서 진보는 보수의 전략적 우수사례를 따라했다.
 진보에게 있어 콘크리트층은 누가 될 수 있을까? 일반대중은 어차피 정책적인면이나 성향 혹은 이기는쪽을 지지함으로 인한 거대 야당으로의 쏠림현상에 의해 뺏어오기가 쉽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에 있어 그 주된 공략층은 여성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런 전략은 아예 노골적으로 캐치프라이즈를 여성에 맞춰 내걸고 있는 노동당과 녹색당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정의당은 원내정당으로서 드러내놓고 노골적인 입장표명을 하기 힘든 것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의 유일한 원내정당인 정의당은 시나브로 여성 콘크리트층을 만들기 위해 어떤 세부전략을 구상하고 진행했을까? 그건 지금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진보의 보수 미러링 : 2. 보수의 언론장악   l   진보의 여론주도권 장악

 보수의 언론장악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가슴이 뜨거운 시절에는 그 불합리한 보수전략을 타도하자고 소리높였다. 그러나 결국 보수의 언론장악도 보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으며, 진보의 선택과 집중 전략인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을 통한 콘크리트 여성 지지층형성에 기여 할 수 있게끔, 대중에게 그러한 자신들의 전략을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게끔 진보언론과의 연대를 쌓았다. 이는 TF 로 구성된 인원들이 그동안 어떤 목소리를 내왔던 이들로 구성되어있는지를 본다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를 지지하는 일반 지지자나 평당원들은 어떤 루트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진보의 보수 미러링 : 3. 보수의 과두정치  l  진보의 과두정치

 직접민주주의도 아닌 간접,대의 민주주의 형태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고도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며, 정치문화 또한 그에 준해야 한다. 
 기원 훨씬 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최악의 정치는 참주정치(독재)이며, 그 다음이 과두정치라고 했다.
 보수는 독재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미화했고, 현재의 과두정치화된 상황 또한 여러가지 전략을 통해 유지 계승하고 있다.
 현재 정의당은 민의가 반영되지 않고 소수 당권자들에 의해서만 모든 의사결정권과 발언권이 주어져 있는 과두정치체제 형태를 띄고 있는게 아닌가?
 드러내 표현은 할 수 없겠지만, 현재의 꽥꽥거리는 평당원과 일반대중들의 소리는 아직 교육-학습되지 못한 감수성이 떨어진 반응일 뿐이라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
 
 진보의 보수 미러링 : 4. 보수의 정치우경화  l  진보의 대중문화 우경화

 보수의 정치우경화는 세계적 추세다. 트럼프, 아베, 시진핑, 푸틴, 정은, 치킨. 음양오행이나 우주적 균형을 생각해봐도 진보가 왼쪽 끝으로 가야 밸런스가 맞겠지만 이미 막시즘과 공산주의는 사상적으로도 폐기된지 오래인데 어떤 것으로 밸런스를 맞춰야 할까.
 드러내놓고 노골적인 편을 들진 않지만 OO진영은 OO를 옹호하거나 지지한다.
 두군데에 다 집어넣어도 알맞은 단어는 보수,진보와, 일베,메갈이다. 일베는 애국보수의 가면을 쓰고 혐오한다. 메갈은 페미니즘의 가면을 쓰고 혐오한다.
 그런데 정상적인 양심의 눈을 가진 이시대의 한 시민이라면, 일베가 애국보수가 아니며 메갈이 페미니즘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보수가 사회계층적 불안계층의 불안과 불만으로 인한 분노를 스핀오프해서 애국보수라는 타이틀을 인정 해 주듯.
 진보가 사회계층적 약자 중의 하나인 여성을 역사적 억압과 폭력에 대한 해방이란 캐치프라이즈로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을 인정하는 것은 동질성을 가진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의 정당성은 개나줘라-는 전략을 그토록 저주했던 보수가 구사했다면, 우리가 모인 진보진영의 리더는 이제는 미러링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가 메갈을 옹호하고 지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혐오미러링에 대한 고해성사를 인정해 천국으로 인도 하는길이 바로 여성해방을 이루는 그 날이다. 그 천국은 진보에게 급진적 여성주의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보수의 콘크리트층의 미러링을 완성시켜준다.

 진보의 보수 미러링 : 5. 보수의 국정교과서  l  정의당의 TF
 
 교과서가 잘못됐다며, 역사교과서의 시각이 편향되어 있다며, 손 봐야 한다며 국정교과서를 진행했다. 수 많은 반대와 세계적 흐름과의 역행을 무릅쓰고 강행했다.
 당 또한 갈등을 해소 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 해야 한다며, 수 많은 단어들 중에 가장 애매성을 띈 어휘를 통한 입장발표를 하며 TF를 구성했다.
 마치 국정교과서 참여인원을 철저하게 비밀로 한 것 처럼, 당은 명부공개를 꺼리고 있다.
 TF는 무엇인가? 이미 결과가 정해진 대내외적인 표준전과가 아닌가? 당내에서의 공식적인 바이블이 아니던가?
 명망있는 엘리트와 리더들을 내세워 그 후광에 무릎 꿇고 경배 해야 하는 신성한 것이 아닌가? 국정교과서와 TF 최종 결과물을 함께 놓고 우린 경배해야 하는 것일까.
 

■ 정의당의 전체주의_ 소신과 양심은 죽었다.

 일반게시판의 어느분이 쪽지를 보내왔다. "반메갈파의 대부분이 평당원이라면 해결 불가능이겠군요" 
 '젠더' 문제로 프레임을 완성시킨 갈등은 빅스피커 VS 평당원과 대중여론으로 고착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괴랄하다. (괴상하고 지랄맞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당지도부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목소리가 일치단결이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들로 인해 마치 당지도부전체, 정의당의 당직자 전체가 <혐오를 혐오로서 대응하는 방법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춰진다는 점이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언제부터 정의당은 이렇게 당지도부가 똘똘뭉쳐 같은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일치단결된 목소리를 내 왔었던가.
 아무리 생각하고 골몰해도 상식적인 선에서 납득이 가지 않으면 이상하고 무언가 잘못 된 것이다.
 이유야 복합적인 것이겠지만, 양쪽 갈등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을 차치하고서라도 당지도부 몇몇쯤은 TF로 상징되는 지향점에 반하는, 평당원과 지지자들의 시각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하나쯤 아니. 몇몇쯤은 나왔어야 하지만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우리의 본 갈등에 대한 의견과 같은 사람이 당지도부에는 존재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혹은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탈린이 몇명을 죽였지? 푸틴은 왜 홍차를 배달했을까. 물론. 우리 당에 이런 잔인무도하고 시대를 거스른 야만적인 폭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현재 진선미의원이 메갈리아로부터 1000만원을 받아 고마움을 표시했고, 보좌관이 메갈리아에 인증까지 했다는 그런 사건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보수의 우수전략 따라하기를 미러링이란 이름 하에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을 명분으로 한 집단들의 도움이나 협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선거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여성의 역사적 억압과 폭력에 대한 부채의식이란 명분보다는 의리와 우리가 남이가라는 그런 부채의식이, 현재 당지도부의 전체 의견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상에대해 더 쉽게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치적 사기 

 사기범죄의 성립요건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여 상대를 기망하여 편취했느냐가 핵심이다.
 정치와 경제의 구분이 모호해진 신자유주의적 환경에 비추어본다면, 금전적 이득은 당의 지지율과 당권으로 해석 할 수 있으며, 지지율과 당권을 주는 것은 당원과 지지자로 볼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의는 곧 당의 가 되어야 하며, 이를 전제로 당원이나 지지자는 표라는 금원을 대여한다.
 그러나 민의를 기망하고 민의와 다른 정책적 지향점을 갖고 당이 나아간다면 그건 당원과 지지자를 기망하여 그 표를 편취 한 사기범죄가 성립된다.
 대한민국 범죄 중 사기와 횡령이 1,2위를 다투는 현실처럼, 또 돈과 권력은 같다는 정경 이퀄리즘처럼.
 정치적 사기혐의도 일반 경제사범들과 같이 솜방망이 처벌을 기대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 당지도부는 평당원들과 정치적 대결을 하고 있다.

 관념적 이상을, 현실로 실천
 이건 정당이라는 곳에 자의로 입당 한 진영과 계파를 떠나 모두에게 해당 되는 사항이다.
 더구나 진영과 계파적 집단논리에 구속됨이 없는 평당원들은 그 이상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덜 복합적이다.
 어쩌면 당은 여성~~ 으로 분류되는 지지자들이 진보진영과 당차원에서 더 실익이 있다 생각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평당원을 버린 것으로 보여진다.
 백번 양보 해서 <그 이유는 이해하지만 혐오는 반대한다> 라는 단순 명제에 대해서, 순환논리로 이루어지는 도돌이표를 방불케 하는 정당성과 당위성과 선민의식 가득 한 납득 하기 힘든 당지도부로 대변되는 TF 를 보자면, 우리에게 교화되거나 아니면 나가거나 양자택일을 하라는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당지도부는 <오웰식 언어>라고 표현되는 보수의 그것과 같은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다.
 하층민을 70% 양산할 계획이면서도 중산층 70%를 이루겠다거나, 금연율을 높이기 위해 담배값을 올리겠다거나, 수질을 개선하고 경기부양을 위해 뉴딜정책과 같은 4대강을 한다거나, 노동자를 위해 비정규직을 4년으로 늘이겠다거나 하는 보수의 언어.
 조지오웰의 1984에서는 디스토피아적 전체주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그곳에서의 언어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이다.
 현재 당에서 쏟아내는 언어를 보라. 교육과 학습강요를 통한 계몽은 TF 젠더문제해결, 혐오는 미러링, 평당원들의 의견은 이분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다간 조만간 반혐오를 입에 올리는 평당원은 반동분자로 색출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당원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성토하고 하루 24시간 쉴틈없이 상소를 올리지만 어쩌면 당지도부에서도 여성과 메갈이라는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느끼는 것은 적군에게서 날아온 투항권유 전갈쯤으로 느껴질 것이라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 
 그런 연유로 자신들에게 반하는 평당원들의 탈당은 적군의 세력이 약화됨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 래디컬페미니즘, 급진적여성주의 노선에 대한 당의 선택과 집중의 한계

 학문의 원류 학문이 있다. 
 물리학이나 통계학은 수학을 부정 할 수 없고, 분자생물학은 생물학을 부정 하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인간존중을 전제로 평등사상을 기준으로 한 인본주의 혹은 인문주의에서 기반하는 천부인권사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명백하게 검색어 하나로도 목도 할 수 있는, 당의 지도부가 정략적 판단으로 놓지 못하고 대중문화의 우경화를 방관을 넘어 옹호하는 몇개의 사이트는 기본 틀을 벗어난지 오래다.
 오늘 게시판에 오르내리는 당의 젊은 피는 이러한 언어를 민주주의 언어로 풀어내겠다고 했는데, 폭압적 사상을 언어로 풀어 낸 것이 전체주의이며 합리적 정치체제를 언어로 풀어낸 것이 민주주의임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풀어내겠다는 언어가 무엇을 표상 할 것인지는 스스로 생각 해 봄직 할 것이다.
 

■ 평당원으로서의 당부
 
 아직 남아있고 핏대를 세우는 당원이 100%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본인 스스로도 스스로 인정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현존하는 정당 중 우리 당이 각자의 관념적 이상에 가장 근접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며, 미련한 인간의 본성때문에 떨치지 못하고 바닥난 희망을 스스로 생성해 내면서까지 발악하고 있다.
 당 지도부의 잘못 된 선택과 집중은, 단추가 잘못 꿰어진 대한민국 정치사와 신자유주의에 편향 된 세계적 흐름의 틈바구니에서 많은 해야 할 일들을 발걸음도 떼지 못한 채 진보세력을 와해 시킬 수 있다.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도 비슷한 이유와 세력들로 인해 발목을 잡힌 역사를 확인 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문장의 원인이 선택의 순간에 늘 같은 선택을 해 왔기 때문이라면, 내가 선택한 정당인 정의당은 이제까지와 다른 선택을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양심과 소신의 기로에서, 지연과 의리의 기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당지도부 구성원이 있다면, 그 내적 갈등이 곧 작고 용기있는 목소리를 낸 이들이 억압받고 폭력을 당해야 했던것에 대한 공포이며, 이제는 비로소 진짜 비명을 질러야 할 때임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