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 창업 일기
외식업 창업 일기를 쓰려한다.
특정 병증에 대한 나의 기록글들처럼, 누군가에겐 참고할만한 글이 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
그리고 나 스스로도 되짚어보며 현재를 직시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마음이 정돈되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이 창업일기를 쓴다.
물론 이 시리즈의 결론이 외식업 창업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어떤 모든 가능성도 모조리 열려 있는게 현재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어느 한상차림 백반정식(세미 한정식쯤?)의 주방에 조리사중 막내로 근무중이지만, 내가 외식업 창업에 대한 관심을 가진 때부터 차츰 이야기를 풀어가려한다.
내가 요리의 'ㅇ' 을 알았다-고 할 수 있었던 건, 군생활 내 의지와 관계없이 상병꺾일때쯤까지 복무했던 간부식당 취사병 보직기간이었다.
멋도 모르고 들어가 그저 시키는대로 하다보니 여러 내부사고로 인해 일병되고 얼마 못되어 간부식당 3명중 왕고가 되었다.
내가 있던 간부식당은 비인가, 즉 국방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일종의 무허가 간부식당이었다.
그 말은 해당 취사장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보직이 공식적으로 취사병이 아니라 소총수였단걸 의미한다.
그런 구조로 인한 문제점이 몇가지 있었는데.
첫째, 공식적인 예산으로 운용되지 않았다는 점
둘째, 불투명한 예산지출이 연대장의 일주일에 한번씩 갖는 개인적 연회(회식) 술자리를 가능케 했다는 것.
셋째, 함께 근무하는 병사들이 본부중대에서 하나, 지원중대에서 하나, 일반 대대에서 하나 이런식의 짬뽕이었다는 것.
어쨌든 이 문제들은 음식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와 살짝 빗나가므로 패스.
지금 돌이켜보면 무척 아쉬운게 있다.
당시인 2000년대 초반은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그리 난립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뼈다귀해장국 감자탕집 프랜차이즈인 통뼈조차도 제대하고 생겼던가. 활성화되었던가 했으니 말이다.
뭐가 아쉽냐면 당시 나의 요리실력이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참 미스테리 하지만, 당시의 난 어지간한 한식계통의 음식은 먹어보면 다 만들 수 있었다.
나물류 무침이든, 어떤 찌개든, 김장류를 제외 한 것들은 분식이든 짜장면 비빔면이든 탕종류는 설렁탕이든 감자탕이든 부대찌개든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왕고를 달면서 삼시세끼 간부 55인분의 메뉴를 직접 짜고, 토요일, 수요일에 한번씩 사제 거래처에 식자재를 주문해 받았다.
그때 내가 그러한 음식들의 레시피를 어찌 알았던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하나 분명한 것은, 특정 메뉴에 대해 일반적인 음식점들이 대개 그러하듯 미리 계량화된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 음식을 낼때 그때그때 계량된 정량의 양념을 넣고 일정한 맛을 내진 않았었다.
메뉴의 양념을 미리 계량화 할 필요가 없었던 건, 삼시세끼 매주마다 메뉴가 달랐기 때문이다.
몇주 후에나 혹은 몇달 후에나 할 음식 메뉴의 양념장 레시피를 미리 계량화해두고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차피 길어도 두달안에 다시 메뉴리스트에 집어넣을 음식들을 계량화하고 기록하지 못했던건 지금에 와선 아쉬운 대목이다.
앞서 언급했던 여러 비인가 간부식당의 문제들로인해 나름 다사다난했던.
내게 요리의 'ㅇ'을 알게 해줬던 간부식당 취사병의 시간이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에 끝을 맺었다.
처음 취급한 콩국물의 문제와 행보관의 권모술수덕에 수색중대로 전출을 가게되었고, 오히려 난 거기서 군생활의 행복을 느꼈다.
3명이서 닭장 같은 취사장에서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삼시세끼 주말도 빨간 휴일도 휴가조차도 제대로 가지 못했던 생활에서 벗어났기에 겨울아침 웃통을 벗고 내달리던 구보의 발걸음도 행복해 했던걸로 기억한다.
제대 후 음식요리에 질린 난 음식을 하는 것과 담을 쌓았고, 그렇게 사회생활 그리고 결혼을 하고 얼마 뒤까지 음식과 결별한 생활을 지속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