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갤럭시노트4가 출시되었던 때다.
뜨겁지도 춤지도 않은 날씨였던 때의 오후 다섯시쯤 되었을까 남자 인지 여자인지 잘 구분가지 않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여섯살은 되었을까 싶은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매장에 들어섰다.
들어와 고개를 내밀며 한 말이, 버스를 기다리는데 매장 앞 정류장 도착버스 시간이 남아 가게 안에 좀 있다 가면 안되느냐는 것이었다.
전에 손님인듯 손님아닌듯 자주 오던 아줌마가 있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었고 주변으로부터 듣기에는 여기저기 식당 같은 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옮겨다니는데 술담배도 하고 식구들이 있는 집에 잘 안들어가기도 하는 등 안정되지 못한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이었고 매장에 가끔 찾아와 이해되기 힘든 약한 진상을 피우곤 가거나 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아주머니에겐 남편이 있었는데, 몇마디만 얘기를 나누었을땐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조금만 더 얘길 나눠보면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과거이야기를 조금씩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동안 가게에 있어도 되냐고 묻는 그 아이를 보고선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 같다.
어린 언니와 그보다 더 어린 동생은 그리 적지 않은 매장을 과하지 않게 이리기웃 저리 기웃하며 구경하기 바빴고, 그리 유복한 환경에 자란 아이들이 아닌 것을 알았던 나는 그들이 괜스레 가게주인 눈치를 볼까 싶어 모니터에 얼굴을 묻고 내 할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장구조에 특화된 내 시야는 쇼케이스나 모니터 옆으로 비치는 모습들에서 어린 언니가 사탕바구니의 사탕을 한주먹 쥐고 주머니에 넣는 모습, 더 어린 동생이 쇼케이스 뒤로 왔다갔다 하는 모습등을 보았으나 크게 대수도 아니거니와 아이들이 나름대로 구경하는 것도 나름 놀이겠거니 생각하곤 무심히 있다가 보냈다.
일주일쯤 흘렀을까.
아이들의 아버지가 가게에 들어와선 요 앞에서 주웠다며 갤럭시노트4 단말기를 내미는 것이었다.
출시되어 한참 판매되고 있는 휴대폰을 주웠다며 또 들고온 사례가 흔치 않기에 의아하게 받아들고선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인사하고 보냈다.
거래처에 전화를 걸어 단말기 모델과 일련번호로 조회를 하려 하니. 아직 개통되지 않은 단말기라는 대답과, 우리 매장의 재고로 잡혀있는 단말기라는 사실을 듣게되었다.
그제서야 재고 확인을 해보니, 박스째로 갤럭시노트4가 없어진거다.
내게 돌아온건 스크래치가 좀 나있고 박스 없이 알맹이만 있는 상태.
매장의 물건이 손탈리가 잘 없을텐데라고 생각하다 일주일 전쯤 아이들이 가게에 체류했던때가 떠오르며 CCTV를 확인했다.
버스 도착시간동안 가게에 좀 있다가 가도 되겠느냐 묻기 전부터 어린 언니는 가게 밖에서 10여분 정도 가게 안을 살폈다.
가게에 들어와선 이리저리 다니다가, 쇼케이스 진열장보다 키가 더 작은 더 어린 동생은 쇼케이스 진열장 뒤로 갔고, 어린 언니는 뒤로 매고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매고 진열장 정면으로 갔다.
더 어린 동생이 자기 키보다 높은 진열장위로 휴대폰 박스를 올리자 어린 언니는 앞으로 돌려맨 가방에 바로 집어 넣는다.
그리고선 아무렇지 않은 듯, 내게 그만 가보겠노라 인사를 하고선 가게를 나갔다.
멍했다.
아이들이 속였다는 괘씸함, 휴대폰은 돌아왔으나 박스도 없고 스크래치도 나있어 판매가 불가능해 떠안아야 하는 손실, 값어치 100여만원.
아이들의 부모,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차분해졌다. 나도 어린 딸아이가 있는데. 왜 훔쳤을까. 괘씸했다. 천지도 모르는 더 어린 동생에게 나름대로 전략을 짜고 시켰을 어린 언니아이가 생각나며 치가 떨렸으나, 왜 훔쳤을까, 동생에게까지 시켜?
다시 생각했다.
왜 훔쳤을까, 휴대폰이 갖고 싶었던 것일까, 휴대폰의 값어치를 갖고 싶었던 것일까.
둘은 다르다. 그런데 좀 모자란 아버지가 가게 앞에서 주웠다며 나름대로 돌려줬다는 것은 어린 언니가 집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가 아버지에게 들켰고, 추궁당해 이실직고 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내게 가져다 준 것이구나.
그럼 어린 언니아이는 휴대폰의 값어치 즉 비용을 생각하고 훔친게 아니라 단지 휴대폰이 갖고 싶었던 거구나.
휴대폰이 갖고 싶어서 동생에게까지 훔치기위해 해야 할 일을 지시했구나.
이러다간 어린 언니아이도, 더 어린 동생도 시간이 흐를 수록 나쁜 행동이 당연한 것이 되고 나쁜길로 가겠구나.
어떻게 해야하지? 내 힘으로 가능할까?
경찰서에 휴대폰 절도 사실을 신고했다. 그리고 CCTV 동영상도 제출했다. 또 누구의 아이인 것 같다는 의견까지 진술했다.
수사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다음날 근처에서 농사일을 하며 며느리 대신 식솔들을 거두는 허리가 굽어가기 시작하는 할머니가 왔다.
어린 언니가 아들에게 많이 맞았다며 용서를 바라는 심정으로 내게 얘기했지만 화가났다.
뭐 잘했다고 애를 패냐고. 용서해주지 않겠으니 일단 가시라고 했다.
경찰서에선 이후 담당자로부터 조치사항에 대해 전화가 왔다.
담당자에게 이야기했다.
미성년자 이런 아이들에게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때 어떤 교육같은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물었고.
어느정도 선에서 취하하고 처벌불원하면 아이에게 기록상으로 남지 않을 수 있느냐도 물었다.
경찰에서도, 학교에서도, 법원에서도 나름 체계적인 교화 교육과정의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어있고 이 아이에게 해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기록에 남지 않을 수 있는 시기에 연락을 하면 한번 경찰서에 방문해달라고 했다.
그 시기가 되었는지 경찰서에서는 나를 불렀고,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진 시간 경찰서에 들어서는데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애원하듯 끊임없이 읍소를 한다. 할머니가 무슨 그리 잘못을 했다고.
그만하시라고 하고 경찰도 할머니를 떼어놓았다.
들어가니 어린 언니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에 앉아있다.
둘이 테이블을 사이에두고 마주 앉았다.
왜 훔쳤어? 괜찮아 얘기해봐.
휴대폰이 갖고 싶어서요.
휴대폰이 없었어?
예.
그래도 남의 걸 훔치면 안되는거잖아?
예.
니가 훔친거 100만원이야. 알아?
...
어느 누구든 갖고 싶은걸 다 가질 순 없어. 알지?
예.
갖고 싶은거 다 가진사람 삼성전자 이건희 같은 사람도 다 가지진 못해. 갖고 싶은거 다 가질 수 있으면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
니가 훔친거 100만원인데, 니가 100만원 값어치도 없는 사람이야?
...
지금 넌 100만원짜리 이 휴대폰이 갖고 싶어 훔쳤지만, 나중에 커서 어른되고 무슨 일을 하든 그때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니야.
...
세상에서 뭐가 제일 소중해?
가족들..
아니야. 세상에서 너한테 제일 소중한건 너지. 니가 있어야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거 아냐. 그런데 너 스스로를 고작 100만원짜리 휴대폰이랑 바꿔? 니가 그것밖에 안돼?
...
니가 훔친건 휴대폰이 아니라, 너고,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까지 한건 니가 언니로서 니 동생들 잘 되게 해줘야 하는데 훔치는거 가르쳐줬기 때문이야.
예.
경찰서에서도, 법원에서도 너 위해서 이런저런 교육과정 같은게 있다고 하니까 잘 배우고, 할머니가 제일 걱정 많이 하시니까 말씀 잘 듣고, 어렵더라도 동생들한테 모범되주고 아저씨랑 약속해.
예.
일어서서 담당자에게 가 처벌불원하겠다 하고, 추후 법정에 불원서가 필요하면 얘기 해달라고 하곤.
그만 자리를 나서서 입구를 나왔는데 할머니가 따라오며 돈이 든 봉투를 쥐어주며 연신 읍소를 한다.
할머니. 손녀가 100만원짜리 훔친게 아니라, 쟤한테는 그냥 갖고 싶은거 훔친거예요. 휴대폰은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애들 때리지 마라고 하고, 잘 키우세요.
얼마의 날들이 지났고, 할머니가 사과주스가 담긴 박스를 들고온다.
그래도 제일 기뻤던 건.
어린 언니아이가 1년쯤 지난 어느날, 옆집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사 수줍은 눈빛으로 부끄러워하며 내게 주었던 순간이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되기위해 필요한건, 그 자신이 가진 돈이나 능력이 많더라도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이나, 친구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되도록 선한 마음과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면, 돈으로도 능력으로도 살 수 없는 마음이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시간은 흘러 이제 중학교 2학년이나 올해 3학년이 될까.
불우한 환경에 손을 잡아주는 이 하나 없어 어린 마음에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비록 손을 직접 잡아주진 못하더라도, 할퀴고 냉대하고 밀어내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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