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니들이 자랄 때가 좋았어야. 머리에 수건을 고쳐쓸 틈조차 없었어도 니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치며 밥먹고 있는 거 보믄 세상에 부러울 게 뭬 있냐 싶었재. 다들 소탈했어야. 호박된장 하나 끓여줘도 맛나게들 먹고, 어찌다 비린 것 좀 쪄주면 얼굴들이 환해져서는...... 다들 먹성이 좋아서 니들이 한꺼번에 막 자랄 때는 두렵기도 하더라. 학교 갔다오믄 먹으라고 감자를 한솥 삶아놓고 나갔다 오믄 어느새 솥이 텅 비어 있곤 했으니까. 그야말로 광의 쌀독에서 쌀이 줄어드는 게 하루가 다르게 보일 때도 있었고 그 독이 빌 때도 있었어. 저녁밥 지을라고 양석 꺼내려고 광에 갔는디 쌀독 바닥에 바가지가 닿을 때면 아이구 내 새끼들 낼 아침밥은 어쩐디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시절이니 부엌일이 싫고 자시고도 없었고나. 큰솥 가득 밥을 짓고 그 옆의 작은 솥 가득 국 끓일 수 있음 그거 하느라 힘들단 생각보다는 이거 내 새끼들 입속으로 다 들어가겠구나 싶어 든든했지야. 니들은 지금 상상도 안될 것이다마는 그르케 양석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던 시절이 우리 시절이네. 다들 그러고 살았다. 먹고사는 일이 젤 중했어.>
<당신은 나보다 먼저 기시요이. 그러는 것이 좋겄어. 이 시상에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따로 없다고 헙디다마는 우리는 온 순서대로 갑시다이. 나보다 세살 많으니 삼년 먼저 가시요이.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든가. 나는 기냥 어찌어찌 이 집서 살다가 영 혼자는 못살겠시믄 큰애 집에 들어가 마늘이라도 까주고 방이라도 닦아줌서 살겄지마는 당신은 어쩔 것이오? 평생을 넘의 손에 살어서 당신이 헐 줄 아는 게 뭐 있소이? 안봐도 뻔하요이. 말수도 없는 늙은이가 방 차지하고 냄새 풍기고 있으믄 누가 좋아하겄나.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 없는 짐덩이요이.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허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믄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요.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 거기까지는 내가 할 것이니께는.>
굳이 읽은 후의 상념을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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